왜 제가 동물 의료에 집착하는지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몇년 전 오랫동안 기르던 강아지 "초록"이를 잃었습니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편지의 내용은 나의 친여동생이 쓴 것입니다.
"내강아지 초록과의 추억"
초록이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입니다.
차도 인적도 없던 잔잔한 설날 아침이었습니다.
어디에서인가 "쿠옴, 크우ー은" 가느다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집의 베란다에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보니
조금 떨어진 골목에 굉장히 작은 강아지가 아장 아장 걸으며,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가 떨고 있는 한마리의 강아지를 웃옷 속에 감싸듯 안아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것이 초록이와의 첫 만남입니다.
부드러운 털은 짧았고, 흰 등에는 엷은 무늬가 있었습니다.
크고 새까만 눈동자는 형언 할수 없이 사랑스럽고, 유리처럼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초록이는 생후1주일? 2주일?...정도의 크기였습니다.
부모님께 초록이를 키우고 싶다고 몇번이나 말씀을 드렸지만"우리 집에서는 안돼"라고 꾸중섞인 말을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강아지 키울 생각 없냐고 물었지만, 모두가 키울 형편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울면서 초록이를 감싸안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습니다.
근처의 주택가 따라 걸으며 초록이를 맡길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근처라고는 하지만 말할 곳도 없이 남의 집을 직접 찾아 다닌 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그때는 필사적이여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계속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정신이 들어 보니 완전히 날도 저물고 주위가 깜깜히 어두워진거였죠, 꽤 멀리까지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를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 초록이 어쩌지.. 어떻게 해야할까?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혼날 게 분명 한데..."
초록이를 바라보며 처음 했던 말이였습니다.
보호해 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고
눈에서눈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이대로 집에 데리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어디에 가도 초록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어"
그 말에 아버지는 투덜거리며 대답했습니다.
" 그렇구나, 이시간이 될 때까지 찾은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가 되는거네"라고!
그 순간부터 강아지는 제 가족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초록이에게 화장실에 가서 일 보는 일을 가르치고,손을 건네는 것과 대답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초록이는 그 모든 것을 똑똑하게 제대로 배워 갔습니다.
"답장 둘"이라고 하자"멍 멍"과 두번 대답 하고
" 작은 답장"이라고 하면 쉰 목소리로 작은 답장을 할 정도로 되었습니다.
밥은 사료 외에 양배추 채 썰기와 기계로 저민 소량의 고기를 삶아 주었습니다.
가끔 어머니는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초록이에게 줄 야채가 없어!""초록이에게 줄 고기가 없네"라고 말씀하시며 장보러 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도 있었고
아무리 야채가 비싼 시기에도 초록이의 밥용으로 항상 사오셨습니다.
아침, 저녁 2회 식사는 항상 야채와 고기,사료로 챙겨 주었고 씩씩하게 잘 먹어주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목욕은 아버지가 시켜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목욕탕에 들어갈 때 함께 들어가서는
"초록아 목욕하자"라고 아버지가 초록이를 부르면,그 말에 욕실까지 달려 와주었습니다.
애기 강아지부터 조금 자랄 때까지 그리고 슬픈 이별을 하기 전까지....계속 아버지가 목욕을 시켜 주셨습니다.
아침 산책은 제 당번이었습니다.
초록이는 산책 할 때 다른 강아지가 아무리 짖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정해진 코스로 오로지 달렸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농구부에 소속해 있었지만
밧줄을 쥔 손을 힘차게 잡아도, 산책은 무척 힘든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산책 도중에 목걸이가 빗나가 초록이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도 발견되지 않고..
반 울상으로 집에 돌아갔더니, 초록이는 벌써 집으로 돌아와 아침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너무 신기하게도 초록이는 자기의 집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초록이는 비 오는 날의 산책은 매우 싫어했어요.
왜일까요?
발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현관의 도어 체인에 로프를 걸어 마루에서 기르고 있어서
산책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발과 몸을 깨끗이 닦아 주었습니다.
매일 습관이 되어서 인지 발을 닦지 않으면 집 안에 절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젖은 길, 질퍼덕한 곳을 걷는 것을 싫어 했고, 웅덩이도 비켜 걸었습니다.
초록이와의 산책은 수없이 많은 추억이 있어서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지정된 코스인 조용한 주택가를 둘이서 조깅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한마리의 큰 개가 우리 쪽을 겨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다가와 말할수없이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큰 허스키 개가 위협을 부리며 다가오는 것이였습니다.
도움을 구하고 싶었지만 새벽의 조용한 주택가에는 사람의 모습이라곤 찾아 볼수 없었습니다.
무서워 떨면서 일단 초록을 안아 올리었습니다
허스키견은 나에게 덤벼 들었습니다.
허스키의 덩치는 일어서면 170cm인 나의 키와 다름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두려움에 심장이 두근 두근 거렸습니다.
날카로운 발톱이 나의 발과 몸,팔까지 깊게 파고들 정도로 두다리로 단단히 붙잡고
엄습해 와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품에 안겨있던 초록이는 내 팔을 풀어 내고 아래로 내려 자신의 몇배나 큰 그 맹수에게 맞서 나간 것입니다!
나를 감싸 용감하게 싸워 준 것입니다.
이런 소동에 바로 옆 주택에서 아저씨가 나오셨고허스키 개를 누르고 우리를 집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아저씨 집에서 기다렸다가, 부랴부랴 귀가했습니다.
집에 도착해 안심되었는지 눈물이 그치지 않고 몸 여기저기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초록이는 내 얼굴을 막 핥으며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이제 괜찮아!" 이렇게 말하며 위로해 주듯..
날 위해 용감히 싸우며 보호 해준 초록아, 고마워!
초록이가 우리 집에 와서부터 15년 동안 우리 가족 중에서도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정년 퇴직, 형의 전근, 나의 독신 생활..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때에도, 초록이는 모두의 마음을 달래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말로만이 아닌 마음을 읽고 이해해 주고 있었습니다.
정년 퇴직 후의 아버지는 초록이와 둘이서 멀리 산책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질비한 멋진 길가를 왕복 4~5시간을 걸었습니다.
"초록이는 아버지의 건강 관리를 해 주고 있구나!"
항상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 어느날 초록이가 귀속 안에 병이 생겨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때문에 체력이 쇠약해져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는 한쪽 귀가 부어 물이 괴어 있어 아프고,
아픈 분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머리를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부득이 입원을 하게 되었고,
처음 병원, 그리고 처음인 입원, 초록이를 포함해 가족 모두가 불안했던 겁니다!
우리에게도 초록이 없는 생활은 처음이였고,
걱정으로 외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무사히 수술은 마쳤지만 한쪽 귀는 예전의 모습과 전혀 변해 버렸어요.
큰 감이 벌어진 귀는 수술로 잘려 나간 만큼 크기도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귀가 어떻든 초록이는 초록이, 어쨌든 생명이 무사하다면!"
우리는 초록이의 퇴원을 마음에서 우러나 변함 없는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한쪽 귀는 전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초록이는13세로, 전에 비해 기운이 없어지고, 식욕도 떨어졌습니다.
수술의 후유증인가?
연령적인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은 배와 가슴 부위에 비슷한 크기의 뾰루지 같은 것이 생겼고 곪아서 고름이 나왔습니다.
곪다, 고름이 나오고...의 반복으로 전혀 좋아지지 않아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원인은 유방암 이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적이없는 암컷에는 많다고 합니다.
또 수술을 위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저번과 다른 장기 입원.
게다가 암이라는 것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걱정되서 우리 가족 모두는 괴로운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 종료의 연락을 받아 어머니와 병원에 달렸갔었습니다.
초록이는 팔에 링거를 하고 있었고,우리가 온 걸 알아차리고 꼬리를 천천히 내려 우리쪽을 보고 일어서려고 했어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심장이 멎을만큼 너무 슬펐고,달려가 울면서 감싸 안아 주었습니다.
며칠 후, 조금씩 조금씩 걸어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말에
한 걸음 두 걸음, 서투르게, 비틀거리면서
병원 앞의 길을 몇미터지만 링거를 끌면서 걸었습니다.
되풀이해가며 병원으로 들어가려하면 싫어하며 집 방향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였습니다.
"차라리 이대로 데려가고 싶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빨리 나아지길 바라고 바라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달래 주었습니다.
매일 병 문안을 가서 면회를하고 아주 조금씩 산책을 하곤 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린 퇴원 날을 맞이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예전처럼 기운차게
꼬리를 올려 즐겁게 산책하는 초록이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걷는 속도는 급격히 떨어져 꼬리는 아래로 드리워진 채..
그리고 마침내 그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는 집을 나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고 다음날 아침의 첫 전철로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초록이는 방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곁에 앉아 초록이 몸에 얼굴을 비벼 대다,
"초록아 조금만 더 힘을 내! 응?!힘내야 해!"
그러나..
반응이 없었습니다.
눈도 뜨지 않았습니다.
나는 초록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직 따뜻한 초록이의 몸을 힘껏 끌어안고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자지 않고 간병하던 어머니가 눈이 빨갛게 부어있었고, 최후의 모습을 말해 주었습니다.
초록이는 누운 채 힘겹게 고개를 들어 아버지에게 끄덕끄덕 3회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최후의 힘을 다해"아버지 고마워"라고 한 거죠!
초록은 징다이지의 동물 공원 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아침 1시간 반을 걸려 지금도 만나러 가고 갑니다.
초록이와 둘도 없이 함께 보낸 시간들 고마웠어.
15년간 정말 고마웠어.
세상을 떠난 것은 6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지금도 흘러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